*퇴고전임으로 수정 될 수 있습니다.

*모브 언급, 청도, 약 청흑 황흑 소재가 섞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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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고 있었다. 싸늘하게 식는 계절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모든 것이 얼어붙는 계절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작업 중이던 노트북을 덮어두고 쿠로코는 볕이 내리쬐는 창문으로 몸을 돌렸다. 창밖으로 헐벗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옷을 단단히 여민 사람들이 그 사이를 지나다니고 있었다. 보도블럭 가득히 쌓인 낙엽들은 자리를 잃어버리고서 바람에 여기저기 날아다니거나 사람들의 발에 밟혀 뭉개졌다. 차가운 계절이다. 기지개를 편 쿠로코는 책상서랍을 열어 채 뜯지 않은 담뱃갑을 꺼내고서 창가로 갔다. 날리는 낙엽들이 쿠로코의 눈에 들어왔다. 곧 바닥에 떨어져 사라질 낙엽들. 쿠로코는 창문 아래로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담뱃갑을 뜯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그리곤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어 라이터를 찾았지만, 라이터는 잡히지 않았다. 담배를 입에 문 채 쿠로코는 라이터를 찾아 책상 위를 뒤적거렸다. 라이터는 어디에도 없었다. 책상 위에는 엉망으로 포개진 책들과 정리하지 못한 자료들만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윈터컵을 기점으로 농구를 그만뒀고, 평범한 대학생이 되었으며 지금은 평범한 작가노릇을 하고 있었다. 1년에 책 한두 권을 내면서 가끔씩 잡지에 글을 투고하는 작가. 쿠로코는 그런 삶을 살았다. 타인의 인생을 눈으로 보고, 그것을 아름답게 포장하여 글로 내뱉는 삶이었다. 농구를 그만두고 남는 것은 책뿐이었다. 타인의 삶을 대신하여 사는 것처럼 지루하게 느껴지는 삶과 답답한 일상. 쿠로코는 책상 아래에 떨어져 있던 라이터를 발견하곤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가 불길을 내며 타들어가고, 재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벌써 서른이다. 쿠로코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올해가 지나면 딱 서른이 되는 나이였다. 서른이 되도록 남는 것은 적당한 크기의 아파트와 빈약한 인간관계뿐이었다. 재미없고 고단한 삶, 쿠로코가 담배를 길게 빨며 생각했다. 집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담배 하나를 모두 태운 쿠로코는 창문에서 떨어져 방안을 둘러보았다. 어지러운 책상, 물건들이 떨어져있어 너저분한 바닥, 벽에 걸린 액자 하나. 쿠로코는 액자 속 사진을 바라봤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윈터컵이 끝나던 날에 찍은 단체 사진이었다. 낯익은 선배들과 친구들의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익숙하면서도 익숙지 않은 모습의 시절. 쿠로코의 시선이 귀퉁이에 닿았다. 우승컵을 들고 있는 카가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최근 미국에서 활동 중인 카가미는 자주 스포츠 뉴스 채널이나 농구 잡지에 얼굴을 드러냈다. 쿠로코는 카가미의 여전히 변치 않는 점프실력과 눈에 띄게 발전한 핸들링에 감탄하곤 했다. 텔레비전 속 카가미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존재 같았다.





=이어지지 않습니다.




꿈 때문인지 이상하게 핫케이크가 먹고 싶다는 생각에 쿠로코는 핫케이크 믹스를 바구니에 넣고, 우유와 계란, 제일 큰 사이즈의 바닐라 아이스크림 그리고 인스턴트 된장국 블록도 바구니에 넣었다. 휴대폰에는 모모이의 부재중 통화내역이 세 건 정도 있었으나 쿠로코는 모모이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걱정을 끼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중학교시절부터 모모이의 관심은 지극하다면 지극하고 지독하다면 지독한 관심이었다. 그녀가 싫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가끔은 그런 관심이, 더군다나 소꿉친구라는 남편이 될 사람이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쏟아 붓는 정성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걱정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기에는 정신적으로 너무 쇠약해져 있는 탓도 있었다. 세계의 향신료. 쿠로코는 화려한 병들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평소 같으면 눈여겨보지 않을 향신료들의 원생산지 따위를 찬찬히 눈으로 훑었다. 자주 듣던 익숙한 나라의 이름도 있었지만, 처음 듣는 나라들도 많았다. 입술을 엄지로 훑으며 그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다른 나라 배경으로 소설 한 번 써보지 그래요? 스페인이나 발리. 아니면 동남아 쪽도 좋을 것 같고. 그인지 그녀인지 기억나지 않는 이가 서재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을 뽑아 빙긋 웃었다. 사랑 잊는 거엔 여행이 최고예요. 나도 그랬는걸. 그녀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책장을 가볍게 넘겼다. 그녀가 들고 있던 책은 쿠로코가 낸 첫 번째로 낸 추잡한 사랑에 대한 책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흔치 않은 독자였던 것 같기도 했다. 쿠로코는 혀를 내밀어 입술에 닿은 엄지에 혀끝을 댔다. 짠맛이었다.

혼자 다 먹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생크림과 제철도 아닌 딸기, 무가당임을 강조하는 요거트 하나를 더 사버리고서 쿠로코는 담배를 입에 문 채 봉투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갔다. 집 앞에는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모를 아오미네가 아파트 입구 앞에서 쪼그리고 앉은 채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다. 쿠로코는 물고 있던 담배를 빈손에 들고 가볍게 재를 털었다. 재는 바람에 날렸다. 그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가 빨갛게 타올랐다.

. ! 테츠!!”

쿠로코를 발견한 아오미네가 그를 손가락질 하며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리고 연이어 말했다.

전화는 왜 안 받아? 네가 어제부터 안 받으니까 사츠키가 자꾸 테츠 군, 과로로 쓰러졌을지도 몰라!’라면서 난리치잖냐.”

죄송합니다, 아오미네 군. 전화를 받을 만한 정신이 아니었어요.”

봉투를 쥔 손에 힘을 주고 쿠로코는 최대한 담담한 얼굴로 아오미네를 바라봤다. 그의 말에 아오미네가 미안한 표정을 지어오며 뒷목을 긁었다. 저런 표정을 지어보이게 만드는 것이 싫었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그것을 발로 비벼 끈 쿠로코는 긴 숨을 내뱉었다. 몸이 자꾸만 뻣뻣해지려고 했다. 뒷목이 뻐근해지며 입가가 움찔, 하고 떨려왔다. 커다란 종이 위에 울퉁불퉁한 원을 그리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완벽한 원을 그려야하는데 자꾸만 손이 떨려서 모가 나고, 각이 지는 원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 이렇게 그려야지. 보란 듯이 완벽하게 원을 그린 사람들이 손을 잡아오고, 그 사람들을 따라 원을 그리고 그것을 또 다시 한 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수술 후 재활치료를 할 때의 기분이 다시금 느껴지는 것에 쿠로코는 이를 악 물었다. 연필조차 제대로 쥐지 못했던 시절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히 떠올라서 속이 울렁거렸다. 세상이 부드럽게 돌고 있었다. 강약을 조절하며 천천히 매끄럽게 돌아가며 정신을 빼놓는 것만 같았다. sweetie. 그 지독한 목소리에 쿠로코는 결국 봉투를 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장본 것들이 들어 있던 봉투는 아스팔트에 부딪혀 널브러졌고, 얄팍한 플라스틱 통이 열리며 들어 있던 딸기가 튕겨져 나와 뭉개지고 요거트가 그 위로 천천히 흘렀다. 봉지 안에서는 통에 담겨져 있던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녹아 고이고 있었다.



=이어지지 않습니다.


 

달콤한 냄새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농구부 연습이 없는 주말은 늘 카가미의 집에서 보냈기에 쿠로코는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아 잡지를 넘겼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어쩐지 듣기 좋았다. 사실 잡지를 본다기보다는 넘기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어차피 쇼핑몰에서 보내온 카탈로그 잡지 중 하나였다. 쿠로코가 잡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동안 카가미는 부엌에서 반죽을 굽고 있었다. 하얀 반죽을 국자로 퍼 팬 위에 동그랗게 모양을 잡아 붓고, 적당한 시간으로 구워 뒤집는 간단한 작업이었지만 말하는 것만큼 쉬운 것도 아니었다. 잡지를 덮어 테이블 위에 두고 쿠로코는 뒤집개를 들고 서 있는 카가미를 지켜봤다. 즐거운 듯 얼굴에 스며있는 웃음기가 보기 좋았다. 그 시선을 눈치 챈 카가미가 고개를 들고 피식 웃었다. 늘 화가 난 것처럼 힘이 들어가 있던 미간도 오늘은 풀려 있었다.

저녁은 뭐가 좋아?”

일식이요.”

대답을 한 뒤 소파에서 일어나 보던 잡지를 책꽂이에 꽂아 넣으러 몇 발짝 움직이던 쿠로코가 잠시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카가미를 돌아보며 말했다.

된장국이 먹고 싶습니다.”

잘 익은 반죽을 접시에 옮겨 담으며 카가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접시 두 장, 하나에는 세 장에 불과한 핫케이크가 다른 접시에는 세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두텁게 쌓여 있었다. 많네요. 어느새 카가미의 곁에 선 쿠로코가 중얼거렸다. 카가미는 그의 말에 그런가, 하고 무심히 대답하곤 냉장고에서 버터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우유를 꺼내왔다. 버터는 한 달째 냉장고에 있던 것이었고,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우유는 바닐라 셰이크를 좋아하는 쿠로코를 위해 구입한 것이었다. 카가미는 버터를 조금 잘라 채 식지 않은 핫케이크 위에 올렸다. 버터가 조금씩 녹아가는 것이 보였다. 아이스크림은 반을 퍼내어 믹서에 넣고, 우유는 반을 부은 뒤 설탕을 가득 퍼서 한 숟갈을 넣었다. 쿠로코는 그 일련의 과정의 옆에서 바라봤다. 믹서를 잠시 작동 시키더니 카가미가 금세 유리잔에 바닐라 셰이크를 부었다. , 간단하잖아. 쿠로코에게 웃어준 카가미가 완성된 핫케이크를 식탁에 옮겼다. 쿠로코는 바닐라 셰이크 두 잔을 식탁 위로 가져갔다.

두껍게 부풀어 오른 핫케이크를 세 장 째 씹어 삼키던 쿠로코는 결국 포크를 내려두고 셰이크가 담긴 컵을 손가락으로 쓱 훑었다. 셰이크가 삼분의 일쯤 남아 있던 컵의 겉면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셰이크는 완전히 액체 상태로 녹아 있었다. 이걸 얼리면 다시 아이스크림이 되는 걸까요. 간단한 질문을 한 쿠로코가 잔을 흔들었다. 잔속의 셰이크가 찰랑거리며 흔들리고, 카가미는 입안에 핫케이크를 가득 넣은 채 쿠로코를 쳐다봤다. 다람쥐 같아요. 잔을 내려둔 쿠로코가 다리를 쭉 뻗어 카가미의 발등 위에 자신의 발을 올렸다. 카가미의 발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늘 따뜻했다. 햇볕이 내리쬐는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며 쿠로코는 눈을 깜빡였다.

곧 인터하이네요.”

.”

그다음은 윈터컵이겠네요.”

, 그렇겠지.”

별 이야길 다한다는 생각을 하며 대답을 해주고서 카가미는 접시에 남은 핫케이크 조각을 포크로 찍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없겠죠.”

나지막이 말을 내뱉은 쿠로코는 멍청하게 앉아 있는 카가미의 발등을 발바닥으로 살짝 누르고는 발을 치웠다. 입안의 것을 모두 삼킨 카가미가 포크로 썰린 채 접시 위에 남겨진 쿠로코 몫의 핫케이크 조각을 잠시 바라보다 시선을 위로 올렸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이린에서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쿠로코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입술을 축였다.

그러니까남은 시간동안 카가미 군이 더 열심히 해달라는 겁니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그거야 당연하잖아. 뭘 바보 같은 소릴 하는 거야.”

싱겁긴. 쿠로코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서 카가미가 피식 웃었다. 남은 조각을 포크로 찢으며 쿠로코는 메마른 입술을 씹었다. 입술에서는 어쩐지 피 맛이 났다. 빈 접시를 싱크대로 옮긴 카가미는 괜히 걱정했잖아, 하며 쿠로코를 돌아보곤 웃었다. 아까보다도 더 작아지고 늘어난 조각들을 쳐다보던 쿠로코도 이내 카가미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같이 장이라도 보러 갈까. 침대에 나란히 누운 채 카가미가 물어왔다. 물음이라기보다 혼잣말 같기도 했다. 푹신한 이불에 몸을 파묻고서 카가미를 쳐다보던 쿠로코는 글쎄요, 하고 말끝을 흐렸다. 바깥에서는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직 완전한 여름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불에서 좋은 냄새가 납니다. 쿠로코는 팔을 뻗어 카가미의 뺨을 매만졌다. 카가미가 기분 좋은 듯 눈을 감았다. 볕에 말려서 그래. 햇님 냄새야. 뺨에 닿은 쿠로코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치며 카가미가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쿠로코는 카가미의 손에 깍지를 꼈다. 거칠거칠한 굳은살이 손바닥에 닿았다. 따뜻한 손이었다.

졸립니다.”

저녁은 자고 생각해봐요. 길게 하품을 하고서 쿠로코가 작게 눈을 떴다. 무방비한 쿠로코의 모습이 귀여운지 쿠로코의 뺨을 쓰다듬어준 카가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깍지를 끼지 않은 나머지 손으로 쿠로코를 끌어 당겼다.

“Dream a little dream of me, sweetie.”

핫케이크 위의 시럽 같은 목소리네요. 카가미의 가슴에 얼굴을 댄 채 쿠로코가 고개를 들어 카가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쿠로코의 허리에 팔을 두른 카가미는 시럽, 하고 말꼬리를 올리며 단어를 읊었다. 이해하지 못한 모양새였다. 평소에는 저렇게 바보 같은 주제에 의외의 곳에서 귀국자녀 같은 대담함을 보여주곤 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시 품에 얼굴을 묻으며 쿠로코는 눈을 감고 얕게 호흡을 했다. 혼자 남겨질 거야. 심장 뛰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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