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욕심을 부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녹아 흐르기 시작한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멍하니 응시하며 쿠로코는 생각했다. 처음 받았을 때만해도 예쁘게 말려 있던 아이스크림의 상단부분은 반쯤 사라져 있었고 그 아래로는 동그란 형태만이 남아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이 손가락까지 더럽히기 시작하자 이제 버려버릴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이 녹은 탓에 그 아래의 와플콘도 물에 젖은 종이마냥 흐느적거리기 시작한 것을 보면 이 이상 손에 쥐고 있다가는 옷까지도 버릴 듯 했다. 반은 어떻게든 삼켰지만 나머지는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터라 버리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공원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근처의 쓰레기통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액체가 되어 겨우 콘에 담겨 있던 아이스크림이 쓰레기봉투 안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약간의 죄책감과 함께 바라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려 쓰레기통을 등지고 화장실을 찾았다. 아이스크림을 잡고 있던 손바닥 전체가 녹은 아이스크림이 묻어 끈적끈적해진 탓이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뒤에 약속장소로 가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애써 자신을 설득하며 쿠로코는 아이스크림을 쥐고 있던 왼손을 몸에 붙이지 않기 위해 어정쩡하게 손을 든 채 속도를 높여 걸었다. 화장실이나 식수대라고 말한 법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결국 손을 씻는 것을 포기하고 먼저 약속장소로 향했다. 상대를 만난 뒤에 근처에 있는 곳에서 손을 씻거나, 어디에서 티슈라도 사서 손을 닦으면 되는 일이니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줄줄 흐르던 액체가 말라붙은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착각도 일었으나 어디까지나 단내가 나는 손을 너무 신경 쓴 나머지 드는 과민반응이었다. 아이스크림이 조금 묻었다고 해서 손가락도 함께 굳는다던가 하는 일은 없다. 만나기로 했던 장소가 어디였는지 가늠하며 그는 손에 대한 것은 잠시 잊기로 했다. 오랜만에 있는 만남인데 불편한 기분으로 있을 수는 없고 손을 씻고 가겠다고 약속시간을 어길 수도 없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약속시간에서 조금 늦는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냥 그러기로 했다. 그가 어서 보고 싶었다. 얼굴을 보지 못한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약속장소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조금 경쾌해졌다. 공원입구에서 보자고 했던 문자를 떠올리며 쿠로코는 빠르게 입구로 향했다. 원래 서 있던 곳에서 오 분쯤을 걸어서야 입구 근처로 갈 수 있었다. 시에서 계획을 세워 만든 공원이라 그런지 크고 복잡했다. 입구에 다다르자 서 있는 익숙한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전보다는 조금 차분해진 듯 보이는 검붉은 머리칼과 듬직한 뒷모습이 약간의 장난기를 불러일으켰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쿠로코는 왼손을 몸에서 조금 떨어뜨린 채 조금 뛰었다.

 

늦었잖아, 쿠로코.”

 

조금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쿠로코를 장난치듯 나무란 카가미가 걸어와도 괜찮았는데, 하고 말을 덧붙였다.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 시선을 알아차리고 쿠로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나름대로 목소리를 가다듬어 낸 말이었지만 생각보다 숨이 많이 섞여 있었다. 오랜만에 뜀박질을 한 탓인지 전보다도 쉽게 숨이 찼다. 이젠 농구를 하던 때와는 다른 몸이라는 것을 이럴 때 자꾸만 자각하게 되었다. 쿠로코가 숨을 고르는 것을 한참이나 지켜봐주던 카가미는 쿠로코의 등을 두드려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전보다도 더 마른 것 같은데. 잘 먹고 있는 거야?”

 

걱정이 섞인 말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나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고 쿠로코는 언뜻 생각했다. 너는 늘 그런 식이죠. 간만에 만나는 것인데도 카가미는 눈치를 볼 줄을 몰랐다. 나이를 먹으면 조금 나아질까 싶었지만 어쩐지 시간이 흐를수록 더한 것 같았다. 그런 면까지도 좋아하고는 있었지만 거의 1년 만에 만나서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일부러 매를 버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하고 조금 부드럽게 말을 할까 했던 쿠로코도 카가미의 말에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그런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는 겁니까?”

? , 그게.”

 

카가미가 말끝을 흐렸다. 그다지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쉰 쿠로코는 오른손을 들어 카가미의 볼을 꼬집었다. 조금 세게 힘을 주었더니 카가미가 아프다며 앓는 소리를 내었지만 손을 때어내지는 않았다. 얌전히 꼬집힌 채 놓아주기를 기다리는 카가미의 얼굴을 한참 응시하던 쿠로코는 이내 볼을 놓아주고 고개를 돌렸다.

 

바카가미 군에게 무언가를 바란 제가 잘못이죠.”

 

딱히 로맨틱한 말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만나자마자 듣는 말이 불평-그가 느끼기에는 그랬다-일 줄은 몰랐다. 때려버릴까 생각했지만 스케줄을 마치자마자 달려온 애인을 차마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대신에 쿠로코는 잠시 왜 하필이면 이런 사람과 사랑에 빠졌을까 잠시 짧은 후회를 했다.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며 농구를 했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공통점도 통하는 것도 없었던 그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늘 그렇듯 답은 나오지 않았고 오랜 관리로 전보다도 잘생겨진 얼굴만 보일 뿐이었다. 다 돈 덕분이죠. 돈 덕분. NBA데뷔와 동시에 실적을 낸 카가미에게 여러 광고가 들어왔던 것을 쿠로코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게 되어버렸지만 아마 지금도 가벼운 쇼 프로그램이나 광고는 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영영 인연도 없을 줄 알았던 피부관리샵에 가본 적도 있다던 카가미의 말을 떠올리며 쿠로코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정말로 왜 좋아하게 되어버린 걸까. 쿠로코가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지러워?”

 

아까 꼬집힌 것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 카가미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쿠로코는 고개를 저었으나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조금 뛰었다고 어지러울 정도로 엉망인 몸은 아닙니다.”

어디 들어가자. 그게 좋겠어.”

 

카가미가 혼자서 결론을 내리고 다짜고짜 손을 잡아 이끌었다. 하필이면 잡은 손도 아이스크림이 묻어 끈적거리는 왼손이었다. 카가미도 잡자마자 묘하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손을 놓지 않은 채 쿠로코를 바라봤다. 이거 뭐야? 딱 그런 눈빛이었다. 잡히지 않은 오른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쿠로코는 오랜만에 마주한 애인을 만나기 전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보았다는 이야기를 해야 했다. 카가미였다면 가볍게 다 먹어치웠을 크기의 아이스크림을 결국 모두 다 먹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처박았다는 말까지 하고나자 아까의 죄책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카가미와 함께할 때는 쿠로코가 조금 먹은 뒤에 나머지는 카가미가 모두 먹어주는 식이라 이렇지는 않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모두 멀리 떨어져 있던 탓이다. 쿠로코의 말에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웃는 카가미를 불만스럽게 쳐다보며 쿠로코는 결코 말하지 못할 불평을 삼켰다.

너무 욕심 부렸잖아. 공원에 오기 전에 있던 가벼운 인터뷰를 하던 중 생각 없이 받아두었다는 티슈를 꺼낸 카가미가 그를 조금 꾸짖었다. 쿠로코는 대답하지 않고 네가 없어서 그런겁니다, 하고 속으로만 변명을 했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는 또 싸워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카가미는 티슈로 손가락까지 꼼꼼히 닦아주었다. 부드러운 손길이라 그제야 애인과 정말로 만났다는 기분이 드는 것 같다고 쿠로코는 내뱉지 못하는 생각들을 쌓았다. 조금만 자존심이 낮았다면 말했을지도 모르는 말들은 차츰차츰 쌓여만 갔다. 보고 싶다고,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면 분명 자신의 일을 버리고서라도 달려와 줄 애인이었으나 그런 낯부끄러운 말을 하기에는 본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손바닥까지 꼼꼼하게 닦아주고 자신의 손까지 닦은 카가미가 깍지를 껴왔다. 이대로 가자. 카가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매니저가 내려두고 차를 들고 가버렸으니 걸어갈 수밖에 없다며 오히려 기쁘다는 듯이 불평을 하는 카가미를 올려다보며 쿠로코는 희미하게 미소를 띠었다. 맞잡은 손이 아까보다도 따끈하고 끈끈해진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까?”

저는 이미 먹었습니다만.”

내가 먹는 거 맛만 보면 되잖아. 아까는 녹는 거 보느라 제대로 맛도 못 봤을 거고.”

 

눈에 보인다는 듯이 말하는 카가미를 꼬집는 대신에 쿠로코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것을 긍정적인 대답으로 알아들은 모양인지 카가미가 힘차게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조금 속도를 내서 걷던 쿠로코는 이내 카가미가 자신의 보폭에 맞춰서 천천히 걸어주고 있음을 알아챘다. 슬며시 고개를 돌려 카가미를 바라보던 쿠로코는 이내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다. 공원은 조용했고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거지.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카가미가 말했다. 웃음이 섞여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루의 일정은 아마도 카가미가 알아서 다 짜왔을 테니 쿠로코가 할 일은 그 일정에 따라 조금 걸어주는 것이 다일 것이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집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쿠로코는 작은 목소리로 보고 싶었습니다, 하고 중얼거렸다. 카가미에게만 겨우 들릴 목소리였다. 오늘은 자존심은 조금 접어두기로 했다. 애인에게 투정을 부리기에도 적은 시간이니까, 오늘 단 하루만 작은 어리광을 부려도 괜찮겠지. 화를 내거나 불평하는 것은 모두 내일로 미뤄두고 쿠로코는 카가미가 이끄는 곳을 따라 걸었다. 바닐라셰이크가 먹고 싶습니다. 입이 짧은 것은 이제 문제되지 않을 것임을 자각하고 쿠로코가 말했다. 그럼 마지바로 가자. 목적지가 바뀌는 것은 금방이었다. 이런 일상을 좋아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함께 있을 때야만 누릴 수 있는 달콤함이 입안을 맴돌고, 욕심은 조금 더 부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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