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곽 기생 카가미 짧은 연성
-쿠로코가 카가미를 샀습니다.
이곳에서 생활한지 벌써 한 달. 그동안 알게 된 것은 쿠로코는 외출을 자주 하지 않는 다는 것과 아침식사 후에는 집무실이나 서재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시녀에게 부탁에 겨우겨우 찾아간 서재에서 쿠로코를 발견했을 땐- 정말 기뻤다. 책을 읽고 있던 쿠로코는 의외라는 얼굴을 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같이 읽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어려서부터 유곽에서 자라온 나는 글을 배우지 못했다. 그저 쿠로코의 옆에 앉아 그가 읽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기분 좋았을 뿐이었다. 그 날로부터 몇 번이나 쿠로코의 서재나 집무실로 찾아가 그 옆에서 얌전히 그를 바라봤다. 쿠로코는 이제껏 보아온 사람들과는 다른 느낌의 사람이었다. 정적인 느낌이라고 해야할까나. 그는 조용하고 잔잔하며 품위 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집만 봐도 쿠로코가 얼마나 부자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왜 나 같은 걸 사들였는지(쿠로코는 샀다는 표현을 싫어하지만) 모를 일이었다. 쿠로코는 나에게 반했다고- 그렇게 이야기해줬지만, 나는 쿠로코가 나의 어떤 부분에 반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기생의 아이였다. 태어나서 유곽을 떠나본 일도 없었고, 어려서부터 여러 사람들을 상대해왔다. 주로 남자를 상대해왔고, 가볍게는 대화정도였지만 대체로 그것들은 잠자리까지 이어졌다. 쿠로코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나는 이미 닳을 대로 닳은 녀석이었다.
머리색이 아름답다- 그런 말은 자주 들어왔다. 같이 일하던 기녀들은 내가 아버지를 닮았다고 했지만, 얼굴조차 모르는 아버지의 색을 알 리가 없었다. 여자를 흉내내기위하여 머리를 길게 길러 그것을 몸종을 시켜 묶곤 했었다. 붉은 색의 열매를 으깨어 입술을 붉게 만들고, 분을 칠하여 얼굴을 하얗게 했다. 너무 어릴 적부터 그렇게 살아와서 그 일을 부끄러워한 일은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끝난 후에 홀로 남은 방안에서 욱신거리는 허리를 붙잡고, 홀로 뒤처리를 하는 것이 가끔 서글펐을 뿐이었다. 이제는 그런 일 따위도 잘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응…, 쿠로코- 벌써 일어나…?”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 더 주무세요, 카가미군.”
“아니, 괜찮아.”
몸을 일으켜 쿠로코에게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늘 행하는 아침인사였다. 쿠로코가 가벼운 스킨십을 좋아하니까, 나도 그러기로 했다. 가볍게 껴안거나, 손을 잡거나- 쿠로코는 그런 종류의 스킨십을 좋아했다. 덕분에 이곳에서 섹스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유곽에서 살 때는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쿠로코와는 하고 싶었다. 쿠로코가 안아준다면- 정말로 이곳에서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이 진심으로 느껴질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유혹을 하려해도 쿠로코는 꿈쩍하지 않았고, 늘 잔잔한 표정으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가끔은 쿠로코가 불능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차마 이것만은 물어볼 용기가 없어서 가슴에만 담아두었다.
쿠로코는 나를 ‘카가미군’이라고 불렀다. 지금까지 딱히 이름으로 불릴 일이 없었고, 불린다고 해도 나를 얕잡아 부르는 표현이 다수여서 쿠로코의 호칭은 조금 어색했다. 팔려온 내가 쿠로코를 이름으로 부른다는 시점에서부터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쿠로코는 언제나 존대를 사용했다. 시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상냥하고, 자상하게 무언가를 부탁했고, 늘 감사를 잊지 않았다. 최근에 점점 이야기를 시작한 시녀들은 쿠로코가 어린 시절부터 그래왔다며 자신들의 존경스러운 주인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쿠로코의 모습을 동경하고 싶었다.
쿠로코는 집과 어울리는 서양식 복장을 주로 입었다. 검은색이나 회색빛의 바지를 입고, 위에는 흰색 셔츠와 조끼 따위를 입었는데, 나는 그런 쿠로코의 모습이 좋았다. 길게 기르지 않고, 자른 머리카락을 쿠로코가 잘 때마다 몰래 만지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딱 한 번 보았던 쿠로코의 유카타 모습은 정말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늘빛의 머리색과 어울리는 남색 유카타가 이제껏 보았던 어떤 남자들 중에서도 제일- 멋졌다.
이곳에서 나는 주로 유카타를 입었다. 기모노를 입던 때보다는 복장이 간편하고, 단순했지만, 여전히 붉은 계열의 화려한 색을 주로 입었다. 유카타는 내가 이곳에 들어오고, 쿠로코가 재단사를 시켜 만들어준 것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원해서 기모노도 한 벌 마련되어있었다. 아직 내게는 기모노가 더 익숙해서였다.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다정했다. 쿠로코의 성격이 여지없이 반영되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긴 머리카락에 대충 빗질을 하고, 옷을 갖춰 침실을 나오면 시녀들에 머리카락을 빗어주겠다며 서로 나서기도 했다. 내가 눈에 가시일 텐데- 그들은 언제나 나를 ‘카가미님’이라는 호칭으로 높이며 나를 다정하게 대해줬다. 그녀들에게 정말로 감사했다.
집무실에 있을 쿠로코를 찾아 집안을 돌아다녔다. 집무실에는 몇 번이나 가봤지만, 이 넓은 집에서 그곳을 찾아가는 것은 언제나 어려웠다. 조용하고, 잔잔한 이곳이 정말 좋았지만, 역시 나는 쿠로코가 곁에 있을 때 가장 편안했다.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서류를 보거나 책을 보는 쿠로코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유곽의 기생의 아이로ㅡ, ‘카가미 타이가’로 태어나서 쿠로코를 만나 행복했다. 이런 잔잔한 행복이 앞으로도 계속 될 수 있기를- 하늘에게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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